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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낭만이 가득한 해변도시 '보령'

최근 이상기온으로 폭우를 비롯해 우박까지 쏟아지는 곳이 많다. 날씨가 요란을 떨며 등장하는 것을 보니 여름이 온 것이 실감 난다. 많은 사람이 여름 하면 휴가를 꿈꾸며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 찌는 듯한 더위도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함께할 것을 생각하며 버티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추천하는 여행지, 충남 보령이다. 보령에는 멋진 해수욕장과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 잡은 머드축제가 사람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도시, 보령 해변 휴양도시로 유명한 보령시는 사계절 내내 푸른 바다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를 향해 열린 땅을 만나 볼 수 있다. 서해의 명산으로 꼽히는 오서산과 성주산, 아미산을 업고 바다를 바라보는 보령은 천혜의 관광자원이 풍부한 중부권의 관광명소다. 이름만 들어도 젊음이 넘실거리는 대천해수욕장과 매달 두 차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무창포 해수욕장, 크고 작은 78개의 섬, 고대의 사찰 성주사지, 석탄박물관은 보령의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해수욕과 삼림욕, 낚시까지! 무창포해수욕장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무창포 해수욕장은 조선 시대의 군창지였던 곳으로 1928년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된 해수욕장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아담한 데다 주변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 덕분에 해수욕과 삼림욕, 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매월 사리 때 1~2일간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이라는 기현상이 생기는데, 무창포해수욕장에서 석대도에 이르는 1.5km 구간에서 여름철 백중사리 때만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왔던, 이 신비의 바닷길 현상이 사실은 매월 음력 사리 때 두 차례 일어나며 일반인이 마음 놓고 들어가도 안전하다고 판단,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해송 숲 사이로 펼쳐지는 바다와 섬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붙잡아 두기도 한다. 또 무창포 바닷물은 시원하지만 차지는 않아 어린이나 노약자를 동반한 가족단위 휴양객에게는 최고의 휴가지로 꼽힌다. 이와 함께 무창포 앞바다에 떠 있는 석대도와 흑섬 사이...

단오제

단오(端午)는 음력 5월 5일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과 뜻이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말한다. 단오는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예로부터 큰 명절로 여겨왔다. 단옷날을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수리란 '신'이라는 뜻과 '높다'는 뜻으로 이것을 합하면 '높은 신이 오는 날'이란 뜻이다. 한편,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단옷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취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해먹었다고 한다. 그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기 때문에 수릿날이라는 명절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단오는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날이 5월 5일이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대나무 통에 쌀을 넣어 물속에 던져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편, 그의 혼을 건진다하여 경쟁적으로 배 젓기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중국에서는 단옷날 대나뭇잎으로 싸서 찐 떡(이를 쫑쯔라한다)을 먹거나 일종의 보트경기인 용선경주(龍船競走) 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월 대보름이 달의 축제인 반면, 단옷날은 계절적으로 태양축제에 속한다. 단오는 신라와 가야시대 이래로 숭상되어왔다. 고려시대 단옷날에는 격구 내지는 돌싸움 등 씩씩한 무용(武勇)적 행사가 행하여 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단오는 3대 절기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민간에서는 그네와 씨름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단옷날 여자들은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도 씻었다. 붉고 푸른 새 옷을 입고 창포뿌리를 깎아 붉은 물을 들여서 비녀를 만들어 꽂았다.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단옷날 아침 이슬이 맺힌 약쑥은 배앓이에 좋고, 산모의 약...

광릉숲축제

광릉숲축제(Gwangneung Forest Festival) 일시 2017.06.03(토) ~ 06.04(일) / 2일간 장소 봉선사, 광릉 숲 일원 추진방향 차별화된 숲 체험 프로그램으로 활경 친화적 축제 분위기 조성 다양한 계층의 문화공연으로 시민이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 조성 시민참여 워킹그룹, 모니터요원 구성으로 시민참여 및 소통기회 확대 국립수목원 개방과 광릉 숲 문화축제를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 극대화 후원 봉선사, 국립수목원, 산린생산기술연구소, 광릉관리소 주최 남양주시 주관 제 12회 광릉숲축제 추진위원회 (위원장 윤수하) 슬로건 산넘고 물건너 숲길 따라서 광릉 숲 560여년 지켜온 숲의 바다... 천연 · 인공림 두얼굴의 조화세조는 1468년 자신의 능이 들어설 자리를 능림으로 정한 뒤 능 주변과 진입로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를 심고 능원과 산직을 두어 관리했다. 광릉에 당시의 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없다. 현재 가장 오래된 활엽수는 졸참나무로 수령 200년 직경 113cm이다. 침엽수 가운데는 전나무가 직경 120cm, 수고 41m로 가장 크다. 광릉 숲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로 383호선 길가에 있는 전나무도 직경 70~90cm의 거목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는 광릉 숲의 최대 시련기였다. 풀 뿌리까지 캐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었고 도벌이 횡행했다. 임업연구원(현 산림과학원)이 2003년 펴낸 '광릉시험림 90년사'를 보면, 1965년 광릉출장소의 주 임무는 도벌꾼으로부터 나무르 지키는 일이었고, 초막을 짓거나 잠복 근무를 하면서 지켰는데도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도벌꾼과 폭력배가 임업시험장 안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1930년대까지 천연림이 90%를 차지하던 광릉 숲은 1960 ~ 70년대 솔잎혹파리가 창궐하면서 소나무가 대부분 고사해 그 자리에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낙엽소을 심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엔 인근 군부대가 숲 115ha를 군사시설 터로 내놓으라고 해 빼앗기기도 했다. 민주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