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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길

탁류[濁流 ] 길 채만식(蔡萬植)의 장편소설저자 : 채만식(蔡萬植)장르 : 소설발표 : 1937~1938년 주소 : 전라북도 군산시 강변로 449(내흥동 285) 전화 : 063-454-7885(7886) 팩스 063-454-7889 채만식문학관 : http://www.gunsan.go.kr/chae/index.gunsan 채만식(蔡萬植)의 장편소설 저자 : 채만식(蔡萬植) 장르 : 소설 발표 : 1937~1938년 1937년 12월부터 1938년 5월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 모함과 사기 ·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은 작자의 대표작이다. 군(郡)의 고용원을 지낸 정주사의 딸 초봉이는 정주사가 미두(米豆)에 미쳐 가세가 기울어지자 약국 제중당에서 일을 했다. 나이가 찬 데다 용모가 예쁜 초봉이를 탐내는 남자가 많았다. 초봉이를 서울로 유인하려던 약국 주인 박재호는 그의 아내의 훼방으로 실패한다. 매파에게 홀린 부모의 권고로 초봉이는 호색가인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한다. 그러나 꼽추인 장형보의 흉계로 남편을 잃고 꼽추에게 몸을 버린다. 무작정 서울로 가던 초봉이는 박재호의 유혹으로 그의 첩이 된다. 얼마 후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다. 장형보가 자기의 아이라면서 아이와 함께 초봉이를 빼앗아간다. 초봉이는 마침내 장형보를 살해하고 경찰서에 자수한다.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배경지가 밀집되어 있는 군산의 원도심은 가까운 곳에 역사적의 숨결과 문학이 베어있는 곳으로 우리 한민족의 아픔과 항쟁을 배우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곳이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탁류길 여행이 시작되는데 박물관은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모토로 과거 무역항으로 행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하여, 서해 물류유통의 천년,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 무역항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제 근대문화 중심도시인 군산의 속살을 들여보자. (구)군산세관은 전라북도 ...

추전역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산123 전화번호 - 033-553-8550 연혁 1973. 10. 16 태백선 개통 1973. 11. 10 역사 신축과 동시에 보통역으로 영업개시 1975. 10. 10 화물취급(무연탄 년간 20여만톤) 1995. 01. 10 여객취급중지(차내취급) 1995. 05. 30 추전역 상징탑 건립 1998. 12. 13 환상선 눈꽃순환열차 최초운행 1999. 09. 19 #1번선 타는곳 포장 1999. 12. 11 화장실 개량(재래식⇒수세식) 열차운행횟수 여객12회(무궁화 12회) 주말임객(토,일,공휴일) 2회(무궁화 2회) 화물 30회 추전역 가는길 버 스 - 태백터미널 하루 20회 운행(하차후 도보 10분거리) 택 시 - 태백역에서 10분(요금 5,000원) 추전역 볼거리 추전역 상징탑(한국에서 제일 높은역 해발 855m) 석탄 운반용 광차(기관차 1량, 광차 3량) 4,505m의 정암터널(한국에서 제일 긴 터널:슬치터널 - 6,128m) 환상선 눈꽃순환열차 운행(12월 중순 - 3월 초순) 간이눈썰매장(12월 개장) 눈꽃열차운행시 먹거리 장터 및 향토음식점 추전역 일대 관광명소(추전역 기준) 용연동굴 2km(한국에서 최고지대 동굴:화전동 소재) 황지연못 7km(낙동강 발원지 : 황지동 소재) 미인폭포 14.2km (원덕방면) 구문소 21.2km(봉화방면) 검룡소 21km(한강 발원지 : 임계,강릉방면) 삼수령 12km(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기점 : 임계,강릉방면) 태백산 16km(석탄박물관, 천제단, 눈썰매장, 단군성전등 : 영월방면) 추 전 역(杻 田 驛 chujeon station)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열차역이다. 해발 855m의 고지대에 위치한 이역은 정암굴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긴 굴을 가지고 있는 역이다. 《싸리밭골》에 세운 역이라서 추전역(杻田驛)이다. 단기 4299년(1973년)에 세워진 역으로 5.16군사혁명 후에 국토건설단원들이 동원되어 건설하였다. 《싸리밭골》 : 중촌에서 왼쪽으로 갈라져 들어간 골짜기이다...

강원도 평창의 전설

약수탕 옛날 평창읍 약수리에서 솟아나는 샘이 피부병에 걸린 사람에게 효험이 있어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 물에 목욕을 하러 오는 사람이 길을 메우고 온통 혼란을 빚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때로는 문둥병 환자가 끼어 와서 이 물에 목욕을 하거나 먹으면 씻은 듯이 병이 나아서 가기도 하니 이에 많은 문둥병 환자들이 한꺼번에 들이 닥쳐서 이 마을은 문둥이 등살에 여간 혼란하지 않았으며 한 때는 밥을 빌어먹는 문둥이 때문에 주민들이 끼니마저 걸러야 할 처지에 놓여지기도 했다. 주민들이 약수 때문에 날로 살기가 어려워지자 이 마을에 살고 있던 기운 센 장사가 절박해진 마을 형편을 알고는 큰 바위를 들어 약수탕을 덮어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얼마간은 바위에 눌려 물이 흐르지 않더니 이후 묻어 놓은 바위 틈을 타고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이 물을 아무리 먹고 아무리 목욕을 해도 병에 아무 효력이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마을 노인들에 의하면 장사가 바위로 약수를 덮은 후 약물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라고 하며 지금은 약수가 없지만 옛날 약수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약수리로 부르며 지금도 옛날 약수가 나오던 곳을 약수터라 하며 맑고 깨끗한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여미륵 평창읍에서 남으로 1km 정도 영월행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길 옆 우측 산비탈에 미륵불이 서 있는 것이 보이며 그 주위에 1m 정도의 돌담이 둘러쳐져 있다. 옛날, 여미륵이 마주 보는 강건너 종부리에 여러 대를 걸쳐 부유하게 살아 오던 황씨 일가가 있었다. 주인 황씨는 구두쇠로 유명하여 아무리 끈질긴 거지라 하더라도 이 황씨네 문 앞에서는 그냥 돌아가야만했었다. 어느 해 봄 백발의 노승 한 사람이 황씨 집을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다. 이에 황부자가 "원 별 미친 놈의 중을 다 보겠군, 내가 언제부터 덕으로 살았나?" 하며 한마디로 거절하자 노승은 황부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황부자님, 시주는 그만 두시고 소승이...